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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잃은여우의 주식강좌 59

Posted at 2010/01/10 16:29 // in 경제통/주식강좌 CLASS // by 씨제스

짝잃은여우의 주식강좌 59

 

옛 민주화 투사들이 망신창이가 되가는군요!


아마 이들은 세상을 탓하며 또 칼을 갈겠지만, 결국 문제는 그들 안에 있는 거겠지요. 가난한 충청도 농민들에겐 쫌 미안한 얘기지만, 우리 사회의 갈등을 표면화시켰다는 점에서 헌재의 결정은 참 흥미롭습니다. 이상주의를 배제한다면, 개혁은 사회구성원들의 갈등에 대한 조정행위에 불과한 것이 겠지요. 고로 개혁을 섬멸적 경쟁쯤으로 생각하는 자들이 개혁의 주체세력일순 없는 걸테구요. 암튼 재밌는 세상입니다.

 

전 개혁하면 솔론이란 사람이 생각나요. 제가 예전에 대학원을 잠깐 다닐적에, 이 사람이 시행했던 재산소유 상한제도를 떠올리며 여러가지 생각을 했던적이 있거든요. 그는 어떻게 고걸 시행할수 있었을까? 또 당시 사회 구성원들은 그걸 어떻게 받아 들이수 있었을까? 혹 현재의 사회구조에 대한 우리의 인식들이 당시 그들의 것보다도 더 나은 것이 없는 것은 아닐까? 소수의 건방진 엘리트주의자들이 다수의 이상주의자들을 만들어내고, 또 그런자들이 꿈꾼 다양한 망상들이, 혹 현실의 문제점들을 합리화시키는 것은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문제를 문제로 인식하지 못하게 하는 이런 자들을, 다수의 보통 사람들이 어떻게 구조적으로 통제할수 있을까? 대충 이런 것들이였어요. 암튼 당시 저는 이 부분에 대한 생각을 과학기술의 발전과 접목시키며 마니 고민해 나갔던 추억이 있답니다.

 

님들!! 혹시 과학기술도 하나의 종교에 불과하단 생각을 해보신 적이 있으세요? 없죠? 뻔해요. 뭐 종교를 신앙적으로만 바라보는 분들이 태반일테니, 아마 이런 질문 자체가 불경스럽다고 생각되시거나, 아님 과학의 합리성을 비하하려는 얘기쯤으로 들리시겠죠. 하지만 긴 역사속에서 현대의 과학기술은 신흥 종교에 불과한 것이랍니다. 고로 일부 식자들처럼 종교와 과학을 본질적으로 구분하려는 것은 어쩜 마니 우스꽝스러운 짓일지도 몰라요.

 

 30여년 전에 어느 백인 노인네가 이런 말을 한적이 있죠. 현재는 서구 세계가, 과학기술을 이용한 군사적, 지적, 경제적 충격으로 세계를 뒤흔들어 놓고 있지만, 앞으로는 그 세계가 비서구적인 이데올로기와 종교적 충격으로서, 서구세계를 뒤흔들어 놓을지도 모른다 이말은 겸손한 백인노인네가 동양사회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한 말이 아니라, 과학기술의 맹신으로 인해 삐뚤어진 인격성을 갖게 된 사람들에게, 그런 자들이 집단적으로 자신을 합리화시키기 위하여 구축하려는 새로운 사회질서가 얼마나 무모한 것인지를 경고한 말일 뿐입니다. 자 오늘은 노령화 사회란 것을 얘기해 드리면서 이 노인네의 말이 무슨 뜻인지를 부연 설명해 드릴께요. 물론 주식 얘기도 하고요.

 

최근 울나라 경제관련 연구소들에서 가장 마니 다루는 주제중 하나가 바로 초고령 사회의 도래라는 것이죠. 요즘 여러 대중매체들도 이걸 가지고 계속 떠들고 있으니깐, 님들도 이게 뭔지는 대충 아실꺼예요. 하지만 님들의 이해가 넘 피상적이고 고정된 인식들은 아닐까 걱정되어 먼저 이 부분을 간단히 정리해 드릴께요.

 

솔직히 고령의 기준이야 딱 어디라고 정할 수는 없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UN 구별법에선, 걍 만65세 이상을 고령 인구로 규정해요. 글구 이 구별법에선, 사회인구 구성원중  65세 이상이 전체인구의 7% 이상이면 그 사회를 고령화 사회(ageing society), 14% 이상이면 고령 사회(aged society), 21% 이상이면 초고령 사회(super aged society)라고 규정한답니다. 고로 현재 울나라는 고령화 사회에서 고령 사회로 넘어가는 중일 것 같네요. 이 부분에 대한 정확한 자료는 제가 찾아보지 않아서 확인은 못했지만 아마 맞을 꺼예요.

 

자 그럼 점점 더 고령화 되어가는 사회의 문제점들을 함 정리해 보죠. 뭐 여러가지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인식되는 것은, 노동력의 부족과 그에 따른 생산성 또는 시장 경쟁력의 저하일 껍니다. 물론 이런 현상들이 유발하게 될 최종적인 사회문제는 해당 사회 구성원들의 물질적 삶의 질 저하라는 것일 테구요. 그런대 님들!! 과연 이게 바른 문제 인식일까요? 좋아요! 이건 나중에 얘기하기로 하고, 일단 선진국들의 고령화 진행 상황을 쫌 얘기해 드릴께요.

 

프랑스의 경우 1864년에 고령화 사회에 진입하여 1979년 고령 사회로 넘어간 후 현재는 초고령 사회를 향해 달려가고 있답니다. 글구 독일의 경우엔, 1932년에 고령화 사회로 진입한후 1972년에 고령사회로 들어간 담에 현재는 초고령 사회로 달려 가구 있대구요.  이왕 확인하는거 일본도 해보죠. 일본은 1970년에 고령화 사회로 집입한 후, 1994년부턴 초고령 사회를 향해 달리구 있대요. 이거 다 OECD 통계에 나온건대, 요거에 따르면 일본은 2006년에 OECD 국가중 젤 먼저 초고령 사회로 들어가게 될 것 갖다는 군요. 이 사람들 우리보고 성질 급하다더니 자기들도 만만치 않은 것 같죠? 암튼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나머지 OECD 국가들도 2020년을 전후해서 초고령 사회로 죄다 진입하게 될 것 같다구 적혀 있어요. 참고로 울나라도 2020년경엔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게 될꺼 같다고 하며, 미국은 2030년경에 진입하게 될 것 갖다고 합니다.

 

상식적인 얘기를 쫌 더 해 보겠습니다. 고령화 문제에 직면한 선진국들의 표면적인 대응책들은 의외로 단순한 것처럼 보이죠. 즉 출산장려, 외부로부터의 노동력 유입정책, 노인과 여성 인구의 생산활동 장려, 과학기술발전을 통한 생산성 및 시장경쟁력의 향상, 뭐 대충 이래요!! 글구 이런 것들은 위한 산업구조조정 및 사회복지제도(교육,의료보험 및 연금제도)의 정비가 아마 전부일껍니다.

 

님들!! 이젠 왜 사회복지 제도들이 서구 유럽 국가들에서 일찍부터 발전되었는지 아시겠죠? 예 맞어요. 이들은 이런 부분에 대하여 우리보다 헐 일찍부터 신경쓸수 밖에 없는 사회구조로 먼저 진입 했었기 때문입니다. 쫌 비참하게 생각되실지는 모르겠으나, 님들이 갖고 계신 출산이나  결혼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 또한, 사회구조 변화에 따른 그다지 자유롭지 못한 개인적 반응에 불과한 것들이죠. 글구 과거 미국 및 서구 유럽국가들의 한국아동 수입정책도 마찬가지예요. 이딴것도, 그들은 그들대로, 우리는 우리대로, 각자의 사회가 직면한 문제들을 서로 다른 모습으로 해소했던 것에 불과한 것이랍니다.

 

암튼 근대이후 과학기술의 발전은 사회 인적구조의 변화 뿐 아니라 사회 구성원들의 인격성 형성에도 큰 영향을 미쳤죠. 글구 서구 국가들은 그 과학기술의 발전과 활용 덕택에 국가간 경쟁에서의 우위를 점하며 우리보다 헐 긴시간 동안 초고령 사회라는 사회인적 구조 변환을 준비할 시간을 가졌었구요.

 

그럼 이런 질문을 함 해보죠. 님들!! 과학기술의 발전이 사회구조의 발전을 의미하는 걸까요? 쉽게 얘기해서, 소가족 제도마저 붕괴된후, 이젠 자식마저 수입하고 있는 일부 선진국 국민들의 가족 제도가 과연 발전된 사회의 모습일수 있을 것 같냔 질문입니다. 물론 아닐 껍니다. 그건 인간의 진보된 행동이 아니라, 그저 변화된 현실에 적응하려는 한 갸냘픈 인간의 반응 양식중 하나일 뿐일 겁니다. 고로 현실적응을 위한 사회구조의 변화와 발전된 사회구조를 혼동하시면 않됩니다. 아셨죠?

 

자 그럼!! 쫌 힘든 질문 하나 더 드리겠습니다. 님들!! 우리사회가 선진국들과 같은 방식을 쓰면, 초고령 사회구조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그럴꺼 같죠? 하지만 이건 택도 없는 망상입니다. 그 이유는 선진국의 표면적인 방법들이 잘못됐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현실속에 우리도 그들과 같은 문제를 갖고 존재한단 전제 때문이예요. 노골적으로 말해서, 그들이 초고령 사회구조의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말속엔, 우리는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명제가 전제되어 있단 얘깁니다. 고로 동일 시장속에서 우리가 그들과 같은 방식으로 그들과 경쟁하며 그들과 같은 결과를 얻을순 없는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컨닝하듯이 그들의 표면적 해결 방안들에만 집착한다면, 아마도 우리는 날마다 가치관이 바뀌는 엄청난 무질서만을 경험한후, 구조적 실패란 현실을 그 결과물로 얻게 될지도 몰라요. 

 

물론 일단 파이만 더 키워놓고 보자는 생각은 더 무식한 발상이죠. 수도이전이나 골프장 증설처럼, 인플레이션을 유발한 후 불로소득을 방조하겠다는 개혁세력의 정책들은 말이죠. 단기적으로 국내자본의 해외유출을 막을 수는 있으나, 장기적으론 그런 왜곡된 자본축척 행위의 일상화가 그나마 남아있는 우리 사회의 기본 경쟁 규칙마저도 무너뜨림으로서, 결국 국내자본의 해외유출을 유발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즉 이런 시장질서의 교란행위는 초고령 사회의 문제를 영원히 풀지 못하게 만드는 초석이 된다는 겁니다. 설령 이자들의 망상이 현실속에서 성공하여 우리가 엄청 큰 파이를 갖게 된다 해도, 그건 아주 일시적인 성공에 불과한 것이므로, 우리가 우리의 문제를 느끼는 시간을 늦추는 역할만을 할수 있을 뿐일껍니다.

 

자 그럼 어케해야 할까요? 하나 하나 기본적인 것들을 다시 정리한후, 생각을 해보도록 하죠. 님들도 아시다시피, 표면적으로 초고령 사회의 도래란 것은 연령별 사회 인적 구조의 변화를 나타내는 말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말이 많은 사람들에게 그토록 무섭게 다가오는 근본 이유는, 초고령 사회란 사회인적구조의 변화가 확대된 시장속 섬멸적 경쟁에 익숙해진 사회구성원들의 인격성에 엄청난 공포를 주기 때문입니다. 고로 초고령 사회의 도래란 것은 어쩜 경제관계를 배타적 경쟁관계로만 파악한 자들이 스스로 만들어낸 허구의 괴물일수도 있어요. 글구 그들의 공포감이 그 괴물을 현실속 괴물로 만들어 내고 있는 건지도 모르구요. 즉 초고령 사회의 문제는 노동력의 부족으로 인한 물질적 삶의 질 하락이 아니라, 경쟁과 착취관계를 전제로한 사회질서의 파괴에 대한 기존 약탈자들의 포장된 공포감일뿐이란 겁니다.

 

이부분을 쫌 부연 설명해드릴께요. 근대 이후 과학기술교의 발전은, 인간의 생존기간만 늘려 놓은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도 변화시켜 놓았죠. 즉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시장의 확대는, 대내외 사회구성원들간의 관계를 더 경쟁적인 관계로 만들어 놓음으로서, 그들의 갈등 조절 능력을 대폭 약화시켜 놓았단 얘깁니다. 물론 이런 과학기술교는 사도바울과 같은 역할을 한 수많은 엘리트 광신자들에 의해서 그 경쟁의 확장성에 스스로 합리성을 부여하며 21세기 가장 교세가 강한 종교로 발전해 왔죠.

 

하지만 과학기술교의 근본 맹점은, 우리가 과학기술의 발전과 그 경쟁을 이용하여 사회 구성원들의 물질적 만족과 발전된 사회구조를 구축하려고 해도, 배타적 경쟁으로 인해 팽창된 해당 사회 구성원들의 욕구가, 과학기술을 이용한 물질적 생상성을 추월하고 있는 한, 그 목표는 구조적으로 도달 불가능한 것이라는 점에 있습니다. 고로 사회 구성원들이 집단적으로 이런 사이비종교에 빠진 경우, 아무리 자유경쟁 또는 생산성 향샹등의 구호를 떠벌이며 적자생존을 통한 발전된 사회모습을 꿈꿔봤자, 그건 항상 그들의 환상속에나 존재할수 있는 미래형 허상일수 밖에 없다는 거죠. 따라서 사회 구성원들의 갈등 관계를 타협 불가능한 경쟁관계로만 인식시킨 과학기술교의 사상들은 마치 여느 종교의 이상들처럼 미래의 평안함만을 꿈꾸게 하며, 현실인식 능력을 대폭 약화시키는 쓰레기일뿐이란 겁니다.

 

고로 우리가 초고령 사회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선, 먼저 과학기술을 이용한 경쟁을 통하여 사회구성원들의 욕구 만족상태에 도달할수 있을 꺼란 환상을 버린후, 또 그런 환상을 우리에게 유지시켜주는 장치들 마저도 하나하나 죄다 부셔버리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는 겁니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모든 생산적 수단들을 갈등 조정의 도구로만 재인식한후, 경쟁이란것은 그 당사자들이 서로의 존재를 인정한후, 서로를 객관적으로 인정할수 있는 범위속에서만 존재할수 있는 갈등의 조정이란 것으로 환원시켜야만 하죠. 글구 그걸 확대된 시장속에서도 적용해야 할꺼구요.

 

자본주의 시장의 확장은 어차피 언젠가는 정지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가진 것입니다. 첨에 언급한 노인네의 걱정도, 지금처럼 서구적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는 시장의 확장이 정지되었을 때, 나타날 반동작용은 결국 반서구적인 것이 될수 밖에 없다는 피상적 걱정에 불과한 것일지도 모르지요. 님들!! 사회의 발전이란 것이, 사회구성원간의 경쟁으로 인한 갈등의 범위를 객관적으로 축소시킴으로서 인간소외를 줄여 나가는 것이라면 지금쯤 우리도 내외부 갈등의 가이드라인을 먼저 정해야 하지 않을까요?

 

마자요!! 행여 우리가 물질 경쟁속 순간의 잔인한 승리만을 계속해서 추구한다면, 즉 우리 스스로 경쟁의 근본 목적과 이유를 망각한채, 경쟁의 광기, 그 자체만을 즐기려 한다면, 아마 울나라 국민들은 2차 공업국가의 가난한 공돌이 & 공순이의 삶을 영원히 벗어나지 못하게 될것입니다. 왜냐면, 지금 우리는 우리보다 더 큰 탐욕과 더 큰 자본의 힘으로 경쟁 갖지도 않은 경쟁을 우리자본시장에서 요구하는 자들이, 이순간에도 우리에게 경쟁의 허용 벙위를 없애자고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사회학자가 이런 말을 하더군요문제제기는 철학적으로, 하지만 해결방안은 이론적으로라고요. 지나치게 확대된 현실문제 인식은 유토피아적 사회관만을 만들어 낼수 있죠. 고로 이걸 방지코자 오늘 얘기한 것을 주식에 응용했을 때 어케 되는 지를 얘기해 드릴께요.

 

님들도 아시다시피, 저는 님들게 주식게임을 대주주와 투자자간의 갈등관계로만 파악하라고 했었습니다. 물론 투자자라는 집단이 항상 들락날락 거리는 다양한 자들로 구성되므로, 그들을 실존하는 어떤 한 주체로 정의하기는 어렵겠지요. 하지만 이런 갈등구조의 상정은 주식시장의 구조와 문제를 객관화 시켜 보여 줍니다. 고로 님들이, 이런식으로 주식시장을 바라봐야만, 두 주체간의 관계속에서 발생하는 갈등의 해소과정에 님들의 의사가 반영될수 있는 겁니다. 즉 이런 시각만이 대주주와 소액투자자들간의 갈등범위를 객관적으로 더 축소시킬수 있단 얘기예요.

 

하지만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개미분들은, 주식게임을 모든 게임 참여자들간의 경쟁관계로만 파악하죠. 만약 주식시장이 이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모든 투자자들간의 자유경쟁 관계라면, 그 경쟁의 범위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며, 또 그 경쟁의 결과도 항상 불확실성을 뛰게 될 껍니다. 즉 주식시장은 운 이외엔 어떤 규칙도 존재하지 않는 예측불능의 장소일꺼란 얘깁니다. 하지만 님들도 아시다시피, 모든 주식게임은 그 결과에 있어 항상 동일성을 갖고 있는 부분이 있죠. 즉 대다수의 소액주주들만의 손실로 한 게임이 끝난다는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미들이 주식게임의 구조를 대주주와 개미들간의 갈등구조로 쉽게 전환하여 인식하지 못하는 이유는, 소위 시장의 엘리트라는 자들이 만들어 내는 이상주의적 논리들이 주류를 형성하는 시장 분위기 때문예요.

 

즉 얄팍한 수동적 지식과 갖지도 않은 미천한 결과에 들뜬 주식시장속 이상주의자들이, 무의식적으로 시장의 지배자들과 야합되어 떠벌이는 논리에 개미들의 의식이 마비되고, 결국 그 개미들은 자신의 현실과 개인적 욕망조차도 구분하지 못하는 상황에 빠져들게 됐기 때문이란 겁니다. 물론 이런 결과는 개미들의 비현실적인 행동들을 유발시킴으로서, 그들의 삶이 일정부분 파괴된 뒤에야 그들은 자신의 게임을 끝내게 되지요. 어떤 주식시장속 이상주의자는 경제와 정치를 얘기하며 이런 시각을 합리화 시킵니다. 글구 또 어떤자는 맥을 잘 짚는게 주식게임이라며 여러가지 희한한 함수관계를 만들어 낸후 고걸 지표로 사용하라면서, 개미들의 잘못된 현실인식을 더욱더 혼란스럽게 만들구요. 하지만 결국 그들이 떠벌이는 것들은, 개미들에게 일반적 현실일수 밖에 없는 비참한 게임결과는 오직 너의 능력 부족의 탓일뿐, 그것을 부정하려 말라는 싸구려 충고에 지나지 않는 것들이겠죠.

 

님들!! 외국인들이 왜 이역만리 이곳에 와서 주식게임을 벌이는지를 함 생각해보세요. 또 왜 선진국들이 자본시장의 개방만을 간절히 원하는지를 생각해 보세요. 글구 울나라 주식시장에 존재하는 대주주들과 기관투자가들이 갖고 있는 님들에 대한 보편적인 시각도 함 생각해 보시구요. 자! 이래도 올라가는 종목에서만 게임을 하고 싶으신가요? 님들이 확률을 얘기하며 희한한 짖거리하면서 그에 대한 합리화을 계속 하시면, 주식은 개미들이 돈을 날리는 곳이란 명제를 깰수 있을 것 같나요? 이런 생각이야 말로, 대주주와 소액주주간의 갈등범위만 키우는 짓이죠.

 

님들!! 님들이 주식으로 돈을 버는 길은 주식게임에서의 두 주체간 갈등의 범위를 객관적인 범위내로 줄이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글구 이런 갈등해소 내지 축소의 상태가 가능한 게임패턴은 딱 한가지 밖에 없구요. 그건 대주주가 저가에 주식을 매도하고, 매도된 그 주식을 대주주가 고가에 재매수하는 매매패턴을 보편화 시키는 것 뿐이죠. 즉 대주주는 배당을 통하여 기업이 실제로 창출한 이익을 가져가게 하고, 투자자는 매도차액를 통하여 자신의 투자금에 대한 기간이익만을 가져가야 한단 얘깁니다. 물론 주가는 이 두주체간의 갈등관계를 풀기 위해 수치화되는 것에 불과한 것이야만 하구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장사 잘되서 돈이 넘쳐나는 기업엔 투자하지 마세요. 글구 주식게임을 무슨 개인통장쯤으로 생각하는 쓰레기 대주주들과도 게임을 벌이지 마시구요. 하지만 님들이 만약 어느 대주주를 신뢰했다면, 그 대주주를 믿고 그에게 적당한 기간의 신용을 창출해 주셔야 합니다. 어쩜 이런 일은 고르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만들어가야 하는 건지도 모릅니다.  이런 것이 초고령 사회에 적용되야하는 주식투자 방식이자 우리가 그걸 준비하는 방법이라고 전 믿어요. 모니터속 챠트나 뉴스나 기업분석보고서 따위나 보면서 하는건 투자가 아니라, 승산없는 도박에 뛰어든 것일 뿐입니다. 그것도 님들이 믿고 신뢰해야할 님들의 채무자인 대주주와 벌이는 싸움이거나, 아님 자신들의 문제를 외부에서 해결하려고 하는 살찐 하얀 돼지들과 벌이는 승산없는 도박일겁니다.

 

어느 정신병자가 이런 말을 하더군요빈곤은 이 세상에 한번도 존재한적이 없었다. 단지 빈곤하다고 느끼는 인간들과 또 그들을 그렇게 느끼게 한 또 다른 인간만이 존재했을 뿐이다 지나치게 확대된 시각일지는 몰라도, 미친생각이라고만 하기도 힘든 말이죠. 이 사람의 말대로라면, 초고령 사회? 행정수도이전? 대박? 쪽박? 이딴것들에 대한 걱정, 희망, 절망, 환희와 분노도, 어쩜 자유롭지 않은 사고에 기인한 정신적 노폐물일수것 같네요.

 

화창한 주말입니다. 하늘이라도 좀 쳐다 아름다운 세상이라고 함 소리쳐 보세요. 집단적 사고를 바꾸기가 어렵다면, 어쩜 이것만이 님들의 삶을 더 자유롭고 풍요하게 만들어 줄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지도 몰라요.

댓글을 남겨 주시면 늦게라도 꼭 찾아가서 인사를 하겠습니다.!!

댓글을 남겨주시고 가시면..행운이.. 그리고 답방은 꼭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