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잃은여우의 주식강좌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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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잃은여우의 주식강좌 60
저 어제 “태극기 휘날리며” 를 봤어요
비디오로 봤는대 넘 길어서 이틀만에 갱신히 다봤어요. 전체 줄거리는 기대보다 시시했지만, 반복해서 동지를 다시 적으로 간주하게 되는 장동건씨(이름맞죠?)의 극중 모습엔 공감이 마니 가더군요. 마치 우리의 현재 모습을 보는 것 같더라구요. 한때는 힘없는 야당의원으로 민주주의를 외치며 당시 지배세력들과 싸우던 이해찬씨가, 어느날 그 민주주의의 완성을 위해 젊은피 수혈을 주장하며 정년단축 사회의 장을 열더니, 이젠 노령화 사회가 문제라며 새로운 정책들을 만들어 내는 정권의 총리가 된후, 맛이 간 불쌍한 야당의원들을 학대하는 걸 보면, 장동건씨의 극중 모습이 그리 허구스럽게 생각되진 않더군요. 아니 도리어 “태극기 휘날리며”속 장동건씨가 맡은 인물이지극히 평펌한 사람일꺼란 생각마저도 듭니다. 긴 시간의 흐름속에 세상이 변한걸까요? 아님 사람이 변한걸까요? 뭐 둘다 변했겠죠. 암튼 영화보다도 더 영화 같은 현실입니다.
며칠 전 현 집권세력들과 같은 배를 탓던 적이 있던 어느 노교수가, 우리사회의 문제는 反엘리트주의와 反지성주의가 그 근본이유라며 현 집권세력을 비난한 적이 있었죠. 이거 완죤히 장동건 씨 같은 인물이 떼거지로 나오는 “태극기 휘날리며 속편”같은 상황입니다. 반엘리트주의와 반지성주의가 문제라??? 아마도 이 교수님은 지성이란말이 엘리트만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시며, 객관적인 권위에 대한 존중만이 사회를 하나의 공동체로 유지 & 발전 시킬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로 생각하시는 분인 것 같더군요. 한마디로 말해서, 자신만이 신의 은총을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이비 예수쟁이 같은 인물일꺼 같단 얘깁니다. 오늘은 이런분이 왜 탄생하게 되는지를 얘기해 드리며 이와 관련된 주식얘기를 해 드릴께요.
님들!! “노예시대의 노예들이 어떻게 자신의 처지를 받아 들일수 있었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신적이 있으신가요? 해보셨다면, 당시 지배계급들이 걍 힘으로만 그런 사회구조를 유지했을 것 같습니까? 물론 아닐껍니다. 역사속에서 지배계급의 숫자는 항상 피지배계급의 숫자보다 적었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수의 지배계급들이 다수의 피지배계급들을 지배할수 있었던 것은 피지배계급들이 스스로 그런 사회질서를 받아 들였기 때문일겁니다. 즉 피지배계급들 스스로 그런 사회구조에 어떤 만족감을갖고 있었기 때문이란 얘깁니다.
그럼 당시 피지배계급들은 어떻게 그런 사회구조속에서 만족감을 갖을 수 있었던 것일까요? 그들이 단지 의식주 문제를 안정적으로 해결할수 있단 이유만으로 그런 사회구조를 걍 체념하며 받아들였기 때문일까요? 물론 이것도 아닐꺼예요. 사회속엔 물질적 요소외에 정신적 요소라 할수 있는 문화란 것이 존재하므로, 당시 피지배계급들이 해당 사회구조를 받아들이는대에는 당시의 문화란 것들이 큰 역할을 했었을 겁니다. 참고로 식자들중엔 이걸 쫌 고상하게 말해서, 경제자본과 문화자본이라고 분류하는 사람도 있답니다.
암튼 이런 가정이 맞는 거라면, 현재 우리 사회의 문화란 것들이 우리사회의 불합리한 구조를 고착화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을수도 있겠네요. 고로 일반적으로 대중매체를 통하여 문화를 생성/소비하는 현대인들의 경우, 먼저 문화란 것에 대한 객관적인 정의부터 바르게 갖고 있어야 대중매체를 통한 바른 문화소비가 가능할 껍니다. 그렇죠?
예! 맞어요. 님들도 아시다시피, 사회구조와 사회문화는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변화합니다. 하지만 역사속에서 문화는 사회구조의 문제점들을 은폐시키는 역할을마니했었죠. 즉 문화란 것은 해당 사회구성원들이 사회적 차이를 스스로 정당한 것으로 느끼게 하는 부정적 기능을 가지고 있단 얘깁니다. 더 쉽게 말해서, 어느 사회의 주류문화와 대중문화는 그 사회속에 존재하는 계급적 차이란 구조적 문제를, 마치 인식의 차이란 개별적 행위의 문제로 착각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는 겁니다. 쫌 비유가 그렇습니다만, 님들이 과거에 tv드라마를 통하여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인, “용의 눈물”이란 어색한 단어의 조합이, 종의 기쁨이란 더 이해하기 힘든 상황을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역할을 했단 겁니다.
이런 문화의 생성/소비의 양식은 차이가 차별을 정당화할수 있단 싸구려 이원론을 만들어 내게 되죠. 고로 이런 싸구려 이원론에 근거한, 지성이 엘리트들만의 것이라는주장은 사회구성원 모두에 대한 가장 저열한 모욕이자 인간의 가치를 스스로 떨어뜨리는 미친자들의 망상에 지나지 않는 것이랍니다. 물론 반지성주의니 반엘리트주의니 하는 헛소리들을 마구 남발하는 대중매체와 같은 저질 문화판매자들도 우리사회의 결합도를 약화시키는 사회악적 존재들이구요. 님들!! 이런 저질 문화시장을 통한사회문제의 은폐행위는 언제가는 산산히 부셔질수밖에 없는 운명을 가진 것이랍니다. 고로 님들은 그런 행위를 조장하는 사람들과도 싸워야하지만 그런 문화를 매개하는 자들과도 싸워야 하는 겁니다. 그래야만 우리가 영화속 장동건씨 같은 인물이 되지 않을수 있는 겁니다. 인간은 지성과 감성과 육체를 동시에 가진 사회적 동물입니다.만약 어느 고상해 보이는 사람의 더 고상해 보이는 지성이, 우리의 싸구려 같은 지성을, 우리의 싸구려 같은 감성을, 그리고 우리의 싸구려 같은 육체마저도 억압함으로서,결국 우리가 고상한 인간이 될수 있음을 스스로 부정하게 만든다면, 우리는 그 고상해 보이는 그들의 지성부터 과감하게 짓밟아 부셔버려야 하는 겁니다. 왜냐면 그길만이 우리가 더 인간다워질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주식시장도 마찬가지예요. 현재 우리의 주식시장엔 여러가지 문화상품들이 존재하고 있으며 우리는 그 문화상품들을 소비하고 있죠. 인터넷 동호회 같은 소위 개인투자가들이 만든 대중문화를 비롯하여, 증권사 및 언론기관들이 만든 주류문화를 우린 만들고 또 소비하고 있단 얘깁니다. 하지만 증시의 이런 문화들은 근본적으로 증시의현 시장구조의 문제점들을 은폐하는 역할을 주로 하고 있답니다. 개미들이 만든 대중문화도, 결국은 날마나 죽어 나가는 개미들이 그 현실을 개인적 능력의 차이로 받아들이며 현시장 질서에 순응하게 만드는 역활을 하는 거구, 증권사 및 언론사들이 만드는 주류문화 또한 이런 시장의 구조를 합리화 시키는 역할밖엔 못한다는 얘깁니다.물론 이땅에 새로 들어온 하얀 욕심꾸러기 돼지들이 만든 또는 만들고 있는 문화도 마찬가지예요. 이들도 그저 자신들만의 이익을 위하여 때론 대중문화의 모습으로, 또때론 전통문화의 모습으로, 그 문화의 소비를 님들에게 강요하고 있는 것일 뿐입니다.
님들!! 님들이 증시속 모든 문화를 소비하여 님들의 것으로 만든다고 해서, 그 증시구조속 님들의 지위엔 어떤 변화도 일어날수 없답니다. 즉 개인들이 주식시장속에 존재하는 모든 상식들과 지식들을 알게 된다고 해도, 개인들은 돈을 벌수 없단 얘깁니다. 왜냐면 주식투자는 개별적인 행위의 결과인 것은 맞지만, 그 행위의 범위 및 행위의결과는 이미 구조적인 틀속에 갇혀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고로 행위와 구조를 동시에 고려하지 않는 일방적인 문화소비 행위는 자신을 더욱 옥죄게 만드는 억압도구에 불과한 것입니다. 고로 이런 무모한 행위를 막기 위해서 님들은 그 싸구려 증시문화들을 바르게 필터링하며 부셔버린후 바르게 새로운 문화를 생성/소비해 나가야만하는 거예요.
자 이번엔 구조란 것과 구조속 행위의 관계를 설명드린후, 이 방법을 얘기해 드릴께요. 일반적으로 사회현상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행위자의 입장에서 그 현상을바라보며 분석하는 방법과 또 그 사회속에 현존하는 질서체계, 즉 사회구조를 바라보며 분석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즉 사회현상을 사회구성원의 행위문제로 인식한후 분석하는 방법과 또 사회구조에 의한 필연적 결과로 인식한후 분석하는 두 방법이 있단 얘깁니다.
역사속에서 예수가 사회현상을 사회구성원들간의 행위문제로만 파악한 자라면, 마르크스는 사회현상을 사회구조에 의한 필연적 결과물로만 인식하고 해석한 자 이지요. 글구 현대는 이런 두 시각이 산만하게 혼재되어 있는 상황이구요. 암튼 사회현상을 바라보는 이 두가지 극단적인 시각은,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는 논란을 일으킬 정도로 접목시키기 어려운 관점의 차이를 갖고 있습니다. 또 이 두관점은 언제든지 상대방의 논리에 의하여 쉽게 무너질수 밖에 없는 이론적 한계를 갖고 있구요.
현재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모든 갈등의 원인도 사실 이 두가지 문제 인식 방법의 대립으로 보시면 되요. 현재 울나라 경제문제의 원인을 경제 구조에 기인해 발생한 것으로 생각하는 자들은 그 구조를 바꾸면 그 문제를 해결할수 있다고 믿죠. 반면에 울나라 경제문제의 원인을 각각의 개별경제주체들의 경쟁력 약화로 생각하는 자들은 경제주체들의 개별적 경쟁력 증진만이 그 문제를 해결할수 있다고 믿고요. 전자가 후자를 비난할땐 자유주의자 또는 기득권자 라고 하며, 후자가 전자를 비난할땐 평등주의자 또는 이상적 사회주의자라고 하지요.
물론 이런 극단적인 두가지의 사회현상 인식방법을 접목시키려는 다양한 시도도 마니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시도중 객관적으로 이론체계를 완성했다고 볼수 있는 것은 현재도 부재한 상태랍니다. 즉 현대의 인간은 사회현상를 보는 두개의 눈을 갖고 있지만, 하나의 사회현상을 하나로 인식할수 있는 능력은 아직 갖고 있지 못하다는 얘깁니다. 재밌죠? 예!! 마져요. 우린 모두 눈을 두개나 가지고 있으나 한눈으로만 세상을 보는 이상한 존재들이랍니다. 참고로 이런 양극단의 시각중 하나의 시력을 완전히상실한 경우, 쉽게 엘리트주의에 빠지죠. 고로 이런 편협한 자들이야 말로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는 암적 존재들이라고 전 생각해요. 글구 이런 양극단의 시각을 걍 시간차를 이용하여 이기적으로 접목하려다간 기회주의자로 전락하기 쉽답니다. 이점 참조하세요.
저는 그동안 님들게 확장된 자아와 축소된 자아의 상태에서 한 대상을 동시에 바라보라고 했었습니다. 물론 이말은 이런 이 두관점의 연결고리를 님들 스스로 찾아보란얘기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님들이 현실속에서 이런 두 관점의 연결고리를 찾는 일은 어쩜 첨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왜냐면 님들이하나를 인정하기 위해선 또 다른 하나를 부정할 수밖에 없을테고, 또 그 두개를 하나로 연결시켜줄 새로운 시각은 기존의 사회질서나 아님 사회구성원들의 기발현된 인격성속에 보편적으로 존재한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자!! 이게 바로 님들의 처절한 자기부정이 필요했던 이유입니다. 즉 님들은 님들이 사용하지 않았던 님들의 새로운 지적 잠재능력을 일깨우기 위하여, 님들의 기존 시각을버려야만 한다는 겁니다. 쉽게 얘기해서, 님들의 자아를 바꾸어 그동안 님들이 느끼지 못했던 현실을 느껴야만 한단 겁니다. 그럼 이부분을 주식시장을 가지고 함 얘기해보지요.
주식을 오래 해본 개인투자자들의 경우, 흔히 순응외엔 다른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즉 자신의 한계를 인정한 상태에서 경험적으로 그리고 확률적으로 인지한안정된 게임을 진행하는 방법외엔 다른 생존방법이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는 거죠. 하지만 이런 경험에 의해 터득한 개인들의 생존방식은 증시 구조의 오해를 만들게 되요. 즉 자신의 이익은 게임속에서 시세에 순응하지 않은 자들이 주는 선물이라고만 생각하게 된단 겁니다. 고로 이런 잘못된 현실인식은 불공정한 경쟁의 법칙에 대한 요상한 순응문화만을 만들어, 증시의 구조적 문제들을 영구히 은폐시키는대에 사용되게 됩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현 증시구조속에서 적응해서 살아남은 자만이 엘리트이자 지성인으로 취급받게 되면서, 그렇지 못한 자들은 영원히 자신의 실패 원인을 오직 자신의 행위속에서만 찾으려 하는 경향을 갖게 된다는 겁니다.
반대로 주식을 구조적인 측면에서 접근하는 자들의 경우, 일반적으로 카지노이론이란 말따위로 자신을 지적 & 도덕적으로 쫌 나은 사람으로 차별화하며 주식게임을 걍무시하기 쉽상이죠. 즉 주식을 하지 않는 걸 넘어서, 주식하는 사람을 쫌 모자란 사람쯤으로 생각하게 된다는 겁니다. 고로 이런 자들의 시각이나 주장은 실제로 존재하는주식시장의 참여자들에게 어떤 현실적인 도움을 전혀 주지 못하게 되지요. 참고로 한 나라의 집권세력이 갖는 증시관이 이런거라면 상당히 비현실적인 증시정책만이 쏟아지게 된답니다.
자 그럼 이런 가정을 함 해보죠. 만약 주식시장에 실제로 존재하는 개인투자자들이 구조적인 측면을 보는 눈을 가졌다면 어떨까요? 그러므로서 그들이 게임상대를 오직대주주로만 규정한다면 어떨 것 같습니까? 이런자들이 자신의 이익을 다른 무능개미들의 선물로만 생각할수 있을까요? 이런 상황에서 이유갖지도 않은 이유로 대주주들이 주가를 황당하게 움직일수 있을꺼 같나요? 한두번은 가능하겠죠. 하지만 이런 일이 반복될순 없을겁니다. 그렇죠?
자 바로 이겁니다. 현실속에서 어떤 기능을 하지 못하는 생각이나 시각은 사치성 쓰레기일뿐이죠. 글구 현실속에서 어떤 문제를 은폐시키는 고상한 행위들 또한 망상에불과한 것들일테이구요. 아마도 이런 양 극단의 시각이나 행위들은 지독한 이기주의에 기인한 걸껍니다. 즉 무식하고 독선적인 이기주의자들이 지성과 엘리트란 가면을쓰고, 마치 자신만이 진정한 현실주의자인양 행동하는 것일뿐, 사실 그들은 실패한 기회주의자들일뿐이란 얘깁니다.
그렇다면 이런 현실속에서, 우리의 증시가 시장의 기능을 회복하여 사회적 결합도를 강화시키는 역할을 할수 있기 위해선, 시장 참가자들은 어떤 생각과 행동들을 취해야만 할까요? 제가 그냥 얘기해 드릴께요.
첫째, 님들은 시장문화가 만든 환상들을 부정할줄 알아야만 합니다. 즉 증시에서 불로소득이란 존재해서도 않되며, 존재할수도 없다고 생각하셔야만 한단 거예요. 이게현실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할지라도 사실은 오직 이것만이 님들의 현실입니다. 현실은 항상 그 현실속에서 행동하는 자들이 만드는 것에 불과한 것이므로, 님들이 이것만이 현실이라고 생각하시면, 바로 이것만이 님들의 현실이 되는 것이죠. 혹 일부만이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할지라도 그런 현실속에서 가장 현실적인 게임은 이런자들만이 할수 있는 겁니다.
둘째는 바른 시장문화를 만들고 소비할줄 알아야 한단 겁니다. 즉 소모적이고 불필요한 갈등을 줄여야 한단 거죠. 이건 꼭 투자자들간의 관계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대주주와 투자자들간의 관계, 글구 해당종목의 실체인 기업의 이해관계 당사들간의 경쟁관계를 좀 더 협력적인 관계로 개선해야 한단 겁니다. 물론 이런일이 게임속에서실제로 일어나기 위해선, 투명성이란 것이 필요하겠죠. 그러나 이 투명성이란 것은 님들이 대주주에게만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갈등주체 모두가 서로에게 투명해져야한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님들도 투명성해 져야 하는 것일 껍니다. 물론 투명해 진다는 것은 자신의 요구를 솔직하게 상대에게 정확히 보여줄수 있는 것을 의미하므로, 님들이 투명해 지기 위해선, 님들은 오직 정당한 것만 정당하게 요구해야 할꺼예요. 쉽게 말해서, 님들이 기본적으로 주식에 대한 택도 없는 환상을 갖고 있어선 않된다는 겁니다. 또한 님들의 요구가 불로소득이지 않기 위해서는, 님들의 주식투자 행위속엔 기업이 님들의 노동을 느낄수 있는 요소가 들어 있어야 하구요. 즉 기업의 현실적 소유주인 대주주가 님들에게 필요로 하는 것을, 그들이 필요로 하는 양과 기간만큼 님들이 제공해야만 한단 겁니다.
셋째, 님들의 사고가 사회적 틀에 얽매여 있어서는 않됩니다. 일반적으로 피지배계급에 있어 사회통제장치들은 갈등의 조정장치가 아니라 착취 질서의 규범화일뿐이죠.고로 현재 증시속에서 피착취계층민으로 존재할수 밖에 없는 님들에게 있어, 증시제도의 개선을 통하여 님들의 상황이 개선될수 있단 환상을 가져서는 않된다는 겁니다.증시제도의 개선을 통하여 증시구조의 형태가 민주적인 모습을 갖게 된다고 해서, 내용면에서의 착취구조가 사라질순 없죠. 증시속의 착취구조는 새로운 구조에 의해서가 아니라, 피착취민들의 의식과 현실인식에 기반한 행동양식의 변화에 의해서만 극복될수 있는 거예요. 물론 제도적인 보완도 뒤따러야 하겠지만. 암튼 순서가 그렇다는 겁니다.
슬슬 글쓰기가 귀챦아 지네요. 걍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개인투자자는 증시속 일정한 틀안에 갇혀서 살수밖에 없는 존재들입니다. 고로 틀의 문제는 아주 중요하겠죠.하지만 틀은 그 틀안에 갇힌자들의 의식과 행위에 의해서만 변화될수 있는 것이므로, 님들의 행위에 후행할 수밖에 없는 거지요. 그렇다면, 시장구조의 개선은, 즉 착취구조의 개선은 결국 님들의 의식과 행동으로부터 먼저 만들어지는 것일 겁니다. 게시판을 보니 저의 종목추천 땜시 절 욕하는 사람이 아직도 많더군요. 참 답답합니다. 절 비난하기 전에 스스로 함 생각해 보세요. 지금 무슨 생각으로 주식을 하고 계십니까? 또 매매기준은 무엇인가요? 혹 그 기준이 해당기업의 대주주에겐 어떤 행위인가를 생각해 보셨나요? 님들이 도박을 원하면, 상대도 사기 도박꾼이 될수 밖에 없는 겁니다. 님들이 도박꾼처럼 행동하면서, 상대를 비난할수 없는 거예요. 싸게 사서 좋기만 한대 뭐라고 그러면 그런 사람이 이상한 거지요. 첨엔 익숙하지 않더래도 몇번 해보면 이게 가장 쉽고 바른 방법이란걸 알게 될꺼예요.
제가 좋아하는 블론디 로자의 글귀나 몇자 적어 놓고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현실인식이 소수의 특권으로 머물러 있는 한, 대중은 항상 잘못된 길로 들어설 위험을 안고있다. 사회구성원들이 현실인식이란 날카롭고 확실한 무기를 손에 넣을 때, 비로소 그 사회는 바르게 발전할수 있는 것이다. 나는 다수의 대중이 우리 모두를 위하여 언젠가는 그것을 반드시 획득하리라고 믿는다”
p.s.담뻔엔 왜 미국얘들이 여기까지 와서 주식을 하는지를 얘기해 드리면서 그들의 특징을 갈켜 드릴께요.